1. 친척 집에 유학 간 학생들의 경우에 일어날 수 있는 시나리오를 하나 소개하죠.

한국에서 별로 공부 안하던 학생이 미국이나 호주 등 다른 나라에 사는 친척 집에 들어갔다. 영어가 안되니 학교에 가서 한국 학생들과 어울린다. 술과 담배, 이성친구와 노는데 정신이 팔린다. 친척 어른에게 적당히 거짓말한다. 친척 어른이 잔소리 한다. 한국 부모에게 친척 어른이 잘 못해준다고 불평한다. 한국 부모는 친척에게 자기 아이 잘 돌봐주지 않는다고 말다툼을 한다. 결국 한국부모와 친척이 서로 등진다. 학생은 다른 집으로 옮긴다. 거기서 신나게 논다. 고등학교를 졸업 못하고, 강제 추방된다. 한국에 돌아와 검정고시 준비하지만 합격하지 못한다. 그러다 군대 간다. 군대 갔다와서 백수로 산다.(네이버 출처)

2. 유학생의 일반적으로 집을 옮기는 과정 하나 소개.

친척집 - 외국인 집 - 한국사람집 - 자취 - 동거

친척집에서 눈치밥을 먹으면서도 한국 학생들과 어울리지 않고 공부만 열심히 할거라면 모르지만 그렇지 않으면, 유학은 안가는 것이 좋다. 학생이 이모집에 가서 제대로 못하면 엄마와 이모는 영원히 원수 사이가 될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외국에 이민간 사람들에게는 절대 친척 아이는 받지 않는 것이 좋다는 불문율이 있다.(네이버 출처)


지난 90년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한국에서는 조기 유학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자녀들을 낯선 이국땅으로 보내려는 부모들이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현실을 볼 수 있었다. 이런 현상은 한국의 부모들이 자녀들의 장래를 생각하기 때문에,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게 하기 위해서, 한국의 교육 현실에 대한 반감때문에, 더 나은 사회적 지위와 부를 얻기위해서, 사회적 성공을 위해서 등등의 다양한 이유와 가치를 가지고 자녀들을 불모의 땅으로 보내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부모의 강권에 의해서이든지, 자녀의 강한 의지에 의해서이든지, 보내지 않으면 안되는 어쩔수 없는 한국의 사회적 분위기때문이든지간에 아무튼 부모에 의해서 보내진 아이들은 낯선 이국땅에서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면서 하루하루를 힘들게 힘들게 살아나간다. 부모의 배경(사회적, 경제적 배경)이 좋든 나쁘든지간에 이곳에서 공부하는 학생들 대부분은 문화적, 사회적, 정치적으로 소수자의 위치를 감내하면서 미국 현지의 학생들과 똑같이 공부한다. 따라서 불만과 불평이 없을수 없다. 그리고 좌절과 절망 또한 그들의 현실이 된다. 그래서 다소 지나치게 보일 정도로 현지의 미국 사람들처럼 행동하고 말하려고 한다. 자신 안에 인종적 편견을 동시에 가지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또한 이해하지 못하는 문화적 충격 상황이 거의 매일같이 발생한다. 어쩌면 “소수자”로서의 비애를 어릴때부터 경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공부하는 것이 그리 녹녹하지도 않다. 지금까지 적당히 대충 학원에서 선행학습 하면서 공부했다면, 이곳에서는 우선 정직하게 성실하게 자신의 능력을 가감없이 발휘해야 “어느정도” 인정받는 학생이 된다. 그만큼 교육적 시스템이 한국과 다르기때문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숙제나 과제를 하기 위해서 인터넷을 통해 다운받은 내용을 그대로 제출했다간 적어도 그러한 학생에 대한 선생님의 신뢰는 거의 범죄자 취급 수준으로서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다. 조금더 과장되게 말하자면 자신의 노력없이 성적을 얻고자하거나 학교생활을 하고자 한다면 이러한 학생에게는 상당한 불이익이 간다는 것이 적어도 이곳 미국 사립 학교의 일반적인 모습이라고 보면 된다. 그렇다고 미국의 모든 학교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또한 학생간의 관계를 두고 보더라도 한국보다는 좀더 자유롭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자신이 “소수자”라는 것을 종종 잊어버리기도 한다. 다만 이것은 경험이 미약한 어린 나이의 학생들이 느낄 수 있는 불만과 불평을 들어보면 알 수 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자신이 인종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상대적으로 볼 수 있다. 즉, 소수자이면서도 상대에 대한 편견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야기의 논점을 다시 돌려서, 일단 조기유학을 위해서라면 어떤 경로를 통해서라도 아이들을 책임질만한 사람을 물색해야 한다. 그 사람이 친척이든, 현지 가디언이든, 현지 지인이든, 관리 회사든지간에 어린 학생을 관리하고 어느 정도 책임질 수 있는 소위 “가디언”이라는 것이 필요하다. 현지 가디언의 역할은 부모대신 법적인 관리 책임자이며, 아이들의 학교와 생활 전반에 대해서 관리 감독하는 권한과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을 말한다.(사람마다 가디언에 대한 정의가 다르지만 우선 이렇게 정의하자.) 다시 말하면 미국 유학을 위해서는 반드시 만들어야하는 필수적인 관계임을 의미한다.

위에서 두 가지 이야기의 예를 들어 보았다. 첫째는 유학생에게서 일어날 수 있는 일반적인 경우, 어떤 측면에서 보면 과연 그럴까하는 의문도 들겠지만,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수많은 일들 중에 가장 빈번한 경우라고 보면된다. 두번째는 한국 유학생들이 친척집에 있든지, 홈스테이를 하든지, 기숙사에 있든지간에 제대로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고 정착하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는 것을 단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것은 미국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사실(미국 유학생 중 정착하는 단계에서 가장 불만과 불평이 많은 부류) 중에 한국 학생이 그 중심에 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이 두 가지의 경우도 가장 큰 전제는 “올바른 관계의 형성”에 관한 문제이다. 그러나 한국의 부모들은 이러한 관계 형성을 대체적으로 간과하고 지나치고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가디언의 역할과 그 중요성에 관해서 좀더 고민하고 심사숙고해야 한다는 점을 반증하는 것이다. 적어도 친척간에 원수지간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소수자로서 아이들이 겪는 생활의 어려움, 갈등, 공부에 대한 중압감, 학교 생활의 부적응, 친구관계의 부적응, 인종에 대한 편견 등등의 수많은 경험들은 어쩌면 어린 나이에 유학와서 짧은 시간에 한꺼번에 다가오는 무거운 짐일수도 있지만, 오히려 이러한 것들이 쓰지만 올바르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좋은 약이 될 수도 있다. 물론 어떻게 “올바른 관계를 형성하느냐”에 따라서 말이다.

이제 그 가디언인 엘피스에 관해서 생각해보자. 위에서 말한 것처럼 친척정도로 치부되거나 여전히 미국에서의 가디언의 역할을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는 부모가 있다면 큰 오산이다. 적어도 엘피스는 학생들이 어떻게 살아가야하고, 어떻게 공부해야하고, 어떻게 성공해야하는지를 강조한다. 사실상 엘피스는 법적인 역할을 뛰어넘어 학생들의 삶의 문제까지 함께 고민하고 설계하고 조언하는 삶의 조언자 역할을 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방식에 불만과 불평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이것은 불만과 불평에 따라서 바뀌어야하는 그런 수단과 방법의 문제가 아니라, 가치의 문제이기때문에 “불변함”이 원칙이다. 따라서 엘피스가 가디언으로서 담당하는 아이들에게는 올바른 관계의 형성을 강조하는 것은 당연하다. 적어도 “바르게”, “정직하게” 살아갈 것을 강조한다. 공부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다, 공부를 쉽게 하는 방법도 많지만 얼마나 올바르게 정직하게 하느냐가 더 중요한 관건이 된다. 즉, 공부와의 올바른 관계 형성을 강조한다. 또한 소수자로서 느끼는 힘든 점들에 관해서도 상대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봉사의 동기부여로써 삼도록 하는 것도 엘피스가 학생들에게 강조하는 또하나의 가치이기도 하다. 스스로 어려움을 알아야 다른 사람의 힘들고 어려운 사정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스스로가 혼자서 노력해서 된다는 이기적인 태도보다 지금의 자신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걱정과 관심과 노력을 다하고 있는지를 알게하고, 이를 바탕으로 다른 사람들에게도 자신이 또 하나의 희망을 만들수 있고, 전파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엘피스의 가치이며 아이들에게 거는 희망인 것이다.

이러한 엘피스의 가디언으로서의 역할이 학생들에게 혹은 부모들에게 불만과 불평일수도 있다. “당장 자녀에게 필요한 것이 대학을 들어가기 위한 점수와 성적일진대….” 옳다. 그리고 현실적이다. 그러나 엘피스 또한 이러한 현실을 간과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학생이나 학부모가 엘피스의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이 힘들다. 아이들이 가지는 불만중에 하나가 엘피스 프로그램에 대한 불만이다. 그러나 이것은 프로그램의 운영과 진행이 학생들에게 오히려 더 엄밀하고 적합하며, 그만큼 학생들에게 성실함과 철저함을 요구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현상으로 보면된다. 유학자체도 쉬운 결정이 아니질대 제대로된 유학 프로그램을 견뎌내는 것 또한 힘든 것은 사실이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피스는 학생들을 그냥 그렇게 유학생활을 대충하라고 말하지 않으며, 좀더 힘차게 도전하고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적응하라고 강조한다. 지금 현재 엘피스의 프로그램에 참여중인 학생들도 잘 적응하고 있으며, 잘 극복하고 있고, 좀더 나은 자신의 미래를 가꾸면서 더 나은 미래를 설계하고 있다. 그러므로 엘피스 프로그램의 강점은 좀더 엄밀하고 적합한 프로그램을 진행함으로써 학생들을 제대로 훈련시키고 진정으로 학생들의 유학 생활을 성공적으로 성취시키고자, 그들의 꿈을 실현시키고자 엘피스의 모든 스텝과 관련 선생님들, 그리고 관련 학교들이 공동으로 노력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하나의 교육 공동체를 형성하여 학생들의 미래를 함께 고민하고, 설계하는 프로그램은 아마도 전무할 것이다. 그래서 학생들의 생활, 공부, 프로그램 참여, 학교문제, 쇼핑, 개인적 고민, 건강, 대인관계 등등 거의 모든 측면에서 개입하며 간섭한다. 그래서인지 초기에 학생들의 불만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지금까지 학생들은 그들 나름의 방식대로 살아왔고, 그렇게 자라왔기 때문에 새로운 적응 단계에서 나올수 있는 현상일 뿐이다. 그러나 뒤집어서 생각해보자. 이는 그만큼 엘피스 프로그램의 운영과 진행이 제대로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프로그램이 제대로 진행이 되면 당연히 불만이 나오게 마련이다. 엘피스의 교육적 목적과 가치에 따라 진행되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변함없이 그럴 것이다. 그러나 학생들의 좀더 깊은 적응력을 도우기 위한 노력 또한 변함없이 진행할 것이다. 또한 엘피스는 학생들과 부모들이 엘피스를 가디언으로서, 자녀를 맡길 수 있는 교육 기관으로서 선택되어졌다. 그리고 엘피스의 학부모들은 엘피스의 교육적 목적과 가치에 동의하고 프로그램의 진행에 관해서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엘피스 프로그램이 존재하는 하나의 큰 힘이 되기도 한다. 이를 바탕으로 학생들과 부모들의 현실적 목적을 이루고, 사회의 보편적 가치를 실현하고, 미래 사회의 리더로 키우기 위해서 엘피스는 지금까지 노력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서로에게 완전한 만족을 주는 관계는 없다. 다만 얼마나 올바른 관계인지가 미래의 방향을 결정할 것이다. 이러한 관계의 한 축에 엘피스가 있다는 점이다.

이제 결론을 내려보자. 어떠한 관계를 형성하든지 그 선택은 각자에게 달려 있다. 그리고 올바르게 만들어 나가는 것도 서로의 노력과 의지에 달려 있다. 관계를 만들어 나갈때 서로에게 맞지 않으면서 억지로 만들어 나가려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만 낼 것이다. 엘피스의 프로그램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새롭고 올바른 관계를 수시로 점검하고 개선해야한다. 엘피스 또한 프로그램을 수 년 동안 이끌어 오면서 서로에게 맞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들이 있었을 것이다. 엘피스는 새로운 희망을 만들기 위한 새로운 관계 정립을 위해 꾸준히 연구하고 노력하고 있다. 엘피스의 프로그램이 모두에게 맞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미래을 위해서, 엘피스가 정말 자신의 미래을 이루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면 더욱 견고하고 튼튼한 관계를 형성하도록 상호 노력해야 한다. 이것은 엘피스만의 힘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조금은 더디게 가더라도 함께 고민하고 연구하고 개선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우리 모두에게 가장 큰 힘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엘피스의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모든 학생들이 희망을 가질수 있도록 하고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희망으로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